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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글/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1. 이야기: 다윗과 예수님

by M.W Archive 2025. 3. 25.

성경은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은 교훈이나 명제가 아닌 이야기를 통해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말합니다.

“복음의 방식은 다름 아니라 이야기다. 이야기는 우리 삶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이야기는 우리를 억지로 끌고 가지 않습니다.
대신 삶의 자리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의 현실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 이야기 가운데, 성경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인물은 다윗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단지 한 영웅의 전기가 아닙니다.
그는 죄인이었고, 도망자였으며, 때로는 버림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과 대면하며 살아낸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중요한 것은, 그의 도덕성이나 탁월한 전투 능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던 그의 체험과 증언 때문이다.”

그의 전 생애는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빚어진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피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 이야기 속에서는 인간적(human)이라는 단어와
그리스도인다운(Christian)이라는 단어가 동의어였다.”


오늘날 우리는 신앙을 ‘영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때때로 신앙의 반대어처럼 취급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인간다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바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됨을 외면하거나 초월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안에 들어오십니다.
성육신이 그것을 가장 분명히 보여줍니다.

“성육신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인간 조건 속으로 들어오시고 그것을 받아들이시며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인간이셨다는 사실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더 불편한 진리였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이셨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부담스러운 사실이었다.”

 

 

예수님의 신성은 많은 이들에게 영광스럽고 감탄할 만한 것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인성,

우리와 같은 몸과 감정과 한계를 가진 존재로 오셨다는 사실오히려 더 부담스러운 진리였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려는 마음은 있지만,
정작 우리의 인간됨 안에 하나님이 임하신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뿐 아니라, 우리의 평범함, 연약함, 일상성 안에 오십니다.
그분의 임재는 ‘위에’가 아니라 ‘가운데’ 있습니다.

 

 

 


다윗의 삶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인간 안에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장(場)이었습니다.

“다윗 이야기 역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공된 이상(idea)이 아니라,
인간됨이 형성되는 장(場)인 있는 모습 그대로의 실재(actuality)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함의 중심과 저변과 사면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우리의 모든 불완전함의 중심과 저변과 사면에
바로 하나님이 자리잡고 계시다고 말해 준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우리 안에 가장 근원적이고 강력한 생명의 충동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 하나님을 향한 갈증은 인간 안에 있는 가장 강력한 욕구다.
이는 성, 권력, 안정, 명성을 향한 욕구를 전부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강한 욕구다.”


다윗의 이야기를 따라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배우는 여정입니다.

 

“예수님 이야기는 하나님의 계시에서 회전축 구실을 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이야기로 말씀하십니다.
그 이야기는 뿌리 내린 현실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마주하는 자리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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