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도 담을 넘는다
– 뿌리내림을 통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의 성장
유진 피터슨의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처음 접했을 때,
영어 원제인 **“Leap Over a Wall”**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편 18편 29절의 다윗의 고백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시 18:29)
이 구절은 믿음의 용기와 돌파를 상징합니다.
장애물을 넘고, 적을 향해 달려가며, 신앙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전진하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원제만 본다면, 이 책은 신앙의 ‘도약’을 가르치는 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아래 쓰인 부제가 눈길을 붙잡습니다.
“Earthy Spirituality for Everyday Christians”,
곧 “일상 그리스도인을 위한 현실적인 영성”.
그리고 한국어 제목은 이렇게 옮겨졌습니다.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저는 처음에는 이 번역이 원제의 분위기와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책을 읽을수록 오히려 이 번역이 훨씬 더 책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말합니다.
“이 책은 한 위대한 성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만 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다.”
다윗은 항상 담을 넘은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망자였고, 죄인이었고, 때론 침묵 속에 하나님을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낸 영성의 이야기였습니다.
피터슨은 그것을 ‘earthy spirituality’—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라 부릅니다.
이 영성은 초자연적인 힘이나 감정의 고양이 아니라,
빨래를 하며 기도하고, 교통체증 속에서 찬송을 부르는 삶 속에 깃듭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육신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인간 조건 속으로 들어오시고 그것을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현실 바깥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가 땀 흘리는 자리, 실패하는 자리, 기다리는 자리 안에 함께하십니다.
신앙은 그 현실에 뿌리를 내리는 삶이며,
바로 거기서 진정한 도약의 힘이 자라납니다.
Leap Over a Wall,
담을 넘는 신앙은 분명히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담을 넘게 하는 힘은, 단순한 열정이나 순간의 도약이 아니라,
깊이 내려간 뿌리에서 오는 것입니다.
나무도 담을 넘습니다.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 어느덧 그 가지가 담을 넘지요.
도약은 찰나지만, 뿌리내림은 시간 속에서 열매 맺는 믿음입니다.
그렇기에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라는 번역 제목은
단순한 언어 선택을 넘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본질을 깊이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담을 넘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하나님과 함께 ‘어디에 뿌리내릴 것인가’를 묻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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