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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관포, 붉은 줄에 달린 운명

프롤로그 - 붉은 줄의 비밀

by M.W Archive 2024. 10. 18.

개항기, 조선의 영관포(永寬浦).

 

밤이 깊어질수록 영관포는 더욱 적막해졌다. 바람은 무겁게 깃발을 흔들었고, 포구를 감싼 일본군의 깃발은 그들의 지배를 무언의 압박으로 전했다.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머물 수 있도록 허용된 계류지였던 이곳은, 이제 일본군의 철저한 감시 아래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낮에도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밤이 되면 더욱 침묵 속으로 숨었다.

 

영관포 깊은 곳, 어둠 속에서 연화각(蓮花閣)이란 작은 기와집이 있었다. 겉으로는 기생들이 오가는 평범한 기방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그날 밤, 연화각의 주인 연서는 홀로 창가에 서서 바깥을 응시했다. 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두드렸고, 그 소리마저 경계해야 할 만큼 이곳은 불안한 곳이 되어 있었다.

 

연서의 눈은 창밖에 걸린 붉은 줄을 바라보았다. 연화각 앞에 걸린 붉은 줄은 그저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은밀한 신호였다. 그 줄이 흔들릴 때마다 연서는 자신이 감시받고 있음을 느꼈고, 지금 그녀의 삶도 그렇게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지만, 모두를 믿을 수는 없었다. 일본군의 감시망이 깊숙이 퍼져 있었고, 이곳 영관포는 그들의 본거지나 다름없었다. 연서의 일상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계속해서 감시와 의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문득, 낯선 발소리가 들렸다. 연서는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감지했다. 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두 남자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옷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고,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을 살폈다.

 

연서는 그들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그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사실이 그녀에게 안전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었다. 서로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는 긴장이 서려 있었다.

 

두 남자는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방 안을 훑었다. 그들 역시 쉽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강준과 민재. 그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고요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의 눈빛은 경계를 풀지 않았고, 연서 역시 그들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모두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목적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곳은 안전한가?”

 

강준이 조용히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서는 강준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확신이 없었고, 연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이 안전할 리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일본군의 감시는 날로 더 심해지고 있었고, 영관포는 그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연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곳은 그들 손 안에 있으니까.”

 

강준은 연서의 말을 들으며 잠시 침묵했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판단하려는 듯 창밖을 바라봤다. 그곳에 걸린 붉은 줄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그 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강준은 그것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소.”

 

강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연서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의 줄을 보았다. 붉은 줄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줄은 살아남기 위한 신호였지만, 그 신호가 언제 꺼질지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저도 당신들이 안전할지 모릅니다.”

 

연서는 말을 아꼈다. 이들 역시 언제든지 그녀를 배신할 수 있었다. 모두가 위험 속에 있었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이곳에서 그녀가 지켜야 할 것은 단 하나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들 앞에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연서는 다시 고개를 돌려 두 남자를 바라봤다. 그들의 의도는 분명했다. 그들은 뭔가를 찾아 이곳까지 왔고, 조선의 운명을 걸고 위험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운명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방 안의 침묵이 길어졌다. 그들 모두는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고, 방 안에 흐르는 긴장감은 점점 더 짙어졌다.

 

연서는 창문 밖의 붉은 줄이 언제까지 흔들릴지 알 수 없었다. 그 줄이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줄이 흔들리고 있는 동안에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그들의 운명이, 그리고 이곳 연화각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작가의 말

이번 이야기에서 연서와 정탐꾼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위태로운 동맹을 맺었지만, 과연 그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일본군의 압박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붉은 줄에 얽힌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연서가 감추고 있는 중요한 진실은 무엇일까요? 정탐꾼들은 과연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 그들의 운명은 계속해서 붉은 줄에 달려 있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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